스테판 에셀 <분노하라>를 읽고 ■혜윰터-책읽는 선생님■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며 끝난다. 늙은 레지스탕스가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결론의 말일것이다.

옮긴이는 <미라보 다리>라는 싯귀를 통해

'사랑은 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삶은 어찌 이리 느리며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라 했다.

이 책은 말이 책이지 보통의 시집보다 얇다. 어쩌면 팜플렛에 더 가깝다고 해야할 것 같은 분량이다. 93세의 늙은, 저자는 백전노장이라 자칭하는 프랑스 반나치 저항세력 레지스탕스의 멤버였다. 오늘날의 프랑스를 있게한 사람들. 프랑스가 갖춘 원칙과 가치를 세웠던 주인공들이다. 프랑스의 잘 짜여진 사회보장제도, 퇴직연금제도 주요 산업 국유화 등의 자산들은 당시 레지스탕스가 이뤄낸 '일반의 이익을 특정인의 이익보다 확실히 존중할 합리적인 경제조직'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백전노장의 레지스탕스는 분노하라고 외친다. 이 분노야말로 정의로운 사회를 일구는 힘의 뿌리이다고. 이 분노야말로 오만방자해진 돈, 국제 금융시장의 독재에 맞설 근원이라고.  사르트르의 '당신은 개인으로서 책임이 있다'는 명제. 어떤 권력에도 어떤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인간의 책임이라는 이름을 걸라는 대명제를 기억하라고.

이 상황을 우리나라에 상황과 연결하자면 너무나도 일치하는 면이 많다.
우리에겐 1941년 발표된 대한민국 건국강령이 있다. 충칭의 임시정부에서 조소앙선생의 삼균주의 사상에 입각해 발표한 건국할 대한민국의 기본틀을 밝혀놓았다. 그 모습대로만 건국될 수 있었다면 매국노들이 판치고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일만큼은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파시즘의 야만이 사라진 이 시대.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레지스탕스는 '오로지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이라고 답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우리나라의 상황이 오버랩되는 것은 오랜 나의 독서방법때문일까? 백전노장의 레지스탕스에게 자꾸 마음을 빼앗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