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석학>칼 포퍼 -정병훈 교수님의 글 ◆석학과 명저◆

세기의 석학4

칼 포퍼
- 비판과 토론을 허용하는 합리적인 ‘열린사회’ 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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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훈


20세기 초엽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아래 철학이 ‘언어적인 전회’를 이룩한 이후,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에 사는 철학자들은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존재하지 않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언어의 용법 혹은 단어의 의미에 관한 뭊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한 언어-분석철학의 대세에 맞서서 진정한 철학적 문제가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지식을 포함하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우주론적 문제라는 철학관을 굿굿하게 지켜 온 20세기의 철학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칼 포퍼 경(Sir Karl Popper)일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철학의 목적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에서 생기는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며, 그 방법은 언어의 분석을 통한 명료화에 있다. 반면에 포퍼는 철학의 관심사가 과학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이해에 기여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언어의 기능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우주 이해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우리의 문제를 단순히 언어의 수수께끼로 설명해 버리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철학이든 과학이든 그러한 추구를 포기한다면 그 매력을 상실해 버릴 것이라고 포퍼는 경고한 바 있다. 오늘날 철학 전공자 이외의 일반 독자들이 철학에 무관심하고 철학적 빈혈증상에 시달리는 것은 20세기의 철학이 지나치게 언어분석에 매달림으로써 철학이 그 매력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포퍼는 비트겐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태생이다. 상반된 철학관을 가졌던 두 거장들이 같은 문화적 토양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젊은 시절 그는 열렬한 마르크스 신봉자였으며, 사회민주당원이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강연을 들은 것을 계기로 이론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비엔나 대학에서 과학과 철학을 공부하였고, 졸업 후에 잠시 중학교의 수학과 물리학의 교사로 일하였다. 그는 1928년 「사고심리학에 있어서의 방법론 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편 근 심리학자 애들러가 설립한 아동들을 위한 사회사업, 작곡가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음악활동, 그리고 좌익 정치활동에도 꾸준히 참가하였다. 그러한 활동 가운데서 벌어졌던 도덕적 정치적 문제에 대한 토론과 논쟁 끝에 그가 얻은 것은 아인슈타인의 물리학과 비교할 때 마르크스 이론, 애들러의 심리학 이론, 프로이드의 정분석학 등이 갖는 과학성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가 ‘귀납의 문제’와 더불어 인식론의 중심적 과제로 보았던 과학과 비과학의 ‘구획의 문제’에 주목하게 된것도 그러한 현실적 경험이 토대가 되었다.

포퍼의 학문적 생애는 논리실증주의자들과의 대결로부터 시작된다. 논리실증주의는 1923년 비엔나 대학의 교수로 부임한 모리츠 슐릭이 조직한 ‘비엔나 써클’을 모체로 형성된 철학운동이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관을 받아들여서 과학적 진술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철학의 과제로 삼았다. 과학에 대한 논리적 분석을 통해서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제시하는 것은 귀납적 과학관이다. 귀납적 과학관이란 과학이 어떠한 이론적 선입견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관찰과 실험으로부터 출발하며, 귀납적 일반화에 의해서 가설이 세워지고, 그 가설이 다시 귀납적 절차에 의해서 검증됨으로써 법칙이나 이론으로 확립된다는 견해이다. 그러므로 그들에 의하면 귀납은 과학을 특징짓는 발견의 방법인 동시에 증명의 방법이었다. 한편 그들은 이러한 귀납적 과학관의 연장으로 ‘검증가능성의 기준은 유의미성의 기준이자, 과학성의 기준이었다. 검증가능성의 기준이란 분석명제이거나 모순명제가 아닌 한 어떤 명제가 의미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의 여부가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의미없는 명제의 집합으로서 학문적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기준에는 종래의 사변적 형이상학을 배제하려는 반(反)형이상학적인 책략이 숨겨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포퍼는 1935년에 간행된 처녀작 「탐구의 논리」에서 이러한 귀납주의적 과학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였다. 그에 의하면 귀납적 방법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며, 과학자들이 귀납적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귀납적 방법은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의 방법이 있다면 오직 ‘추측과 반박의 방법’뿐이라고 주장한다. 오류를 범하기 십상인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무한한 미지의 세계에 관한 진리에 저2ㅂ근해 가는 유일한 방법은 실수로부터 배우는 시행착오의 방법 뿐이라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것은 아메바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기체가 스스로 살아남으려는 생존의 모습과 흡사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식 진보의 모습을 포퍼는 P1-tt-ee-92(P=problem:문제, TT=tentative theories:임시의 해결책, EE=error elemination:비판을 통한 오류 제거)라는 단순화된 도식으로 요약한다. 그러한 생각에서 발전된 것이 그의 가설연역적 방법이다. 이 방법에 따르면 과학적 탐구는 관찰이 아닌 문제에서 출발하며, 그 문제에 대한 해결로서 과학자들은 대담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설을 착상한다. 가설이 제시되고 나면 엄격한 테스트의 절차가 실행된다. 테스트에서 가설의 결함이 발견되면 다시 문제 상황으로 돌아가게 되고, 테스트를 통고하게 되면 그 가설은 방증(corroboration) 된 것으로 인정되어 잠정적인 이론의 지위를 얻게 된다. 따라서 과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사례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과학자 공동체는 열린 사회이며, 이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대담하게 비판을 허용하고, 그 비판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방법론을 토대로 포퍼가 제안하는 과학성의 기준이 바로 반증가능성의 기준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어떤 이론이 과학적이라 함은 어떤 경우라면 그 이론이 틀렸음이 밝혀질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반박가능성, 테스트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면 형이상학은 분명코 과학과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하지는 않다. 형이상학은 오히려 많은 경우에 과학에 유익한데, 그것은 형이상학이 가설을 착상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포퍼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철학 이외의 개별학문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형이상학은 서로 열려있는 관계이며 서로의 성과를 주고 받으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구획의 기준은 당시 과학을 표방하던 마르크스의 이론, 애들러의 이론, 정신분석학 등의 사이비 과학임을 드러내 준다.

한편 포퍼는 이러한 비판적 방법을 적용하여 열린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에 의하면 비판을 허용하고, 비판을 받아들이는 일이 가능한 사회가 합리적인 사회이며, 열린 사회라는 것이다. 비판과 토론의 방법은 폭력이 아닌 이성을 통해서 우리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진적 사회공학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 이러한 사회철학은 포퍼가 나치를 피해서 뉴질랜드로 망명했던 시절(1937-1946)에 출간한 「열린 사회의 그 적들」(1945)과, 「역사주의의 빈곤」(1975)에 담겨있다. 그러나 포퍼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와 나치즘, 그밖의 갖가지 전체주의의 공통적인 특징인 역사법칙주의에 대한 비판적 작업에 착수한 것은 파시즘과 코뮤니즘의 인기가 상승하던 1930년 무렵 부터였다. 포퍼가 대중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 두 저서 덕분이었다. 마침내 그는 1946년 런던대학교 정치경제학부의 논리학과 과학방법론 교수로 초빙되었고, 은퇴하면서 명예교수로 거기에 머물렀다. 그의 「탐구의 논리」는 1959년 「과학적 발견의 논리」라는 이름으로 25년만에 새로 출판되었다.

포퍼의 철학적 삶의 후반부는 상대주의 주관주의 비합리주의와 대결로서 전개된다. 1962년 출간된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포퍼의 반증주의 과학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고, 이에 자극받은 상대주의 주관주의 비합리주의의 입장들이 재등장하는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1972년 「객관식 지식」이 출간된 이래, 포퍼는 자신의 객관주의를 존재론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세 세계 이론’이다. 포퍼에 의하면 이 세계는 존재론적으로 세 개의 하부 세계로 나누어질 수 있다. 세계 1은 물질의 세계, 세계 2는 인간의 심리적 의식 경험의 세계, 마지막으로 세계 3은 세계 2의 산물로서 ‘인식의 도구’인 언어로 표현된 세계, 즉 명제, 이론, 논증의 세계이다. 이 세 가지 세계 가운데 세계 1과 세계 2, 세계 3은 서로 동등하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한편 세계 1과 세계 3은 세계 2를 통해서 접촉한다. 이 세계들 중에서 세계 3은 비판을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세계로서 자율적인 세계이다. 불완전한 지식을 포함하는 영익인 이 세계3은 ‘열려있다’는 기본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세계 3의 구성원, 즉 지식의 진보를 가져온다.

이 ‘세 세계 이론’은 객관적 인식의 가능성을 뒷받침할 존재론적 영역을 설정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추구를 더 잘 설명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포퍼는 인식론과 존재론의 결합을 추구한 것이다.

이와 같이 포퍼는 그의 전 생애를 ‘비판적 합리주의’라는 이름으로 집약되는 합리적 방법과 그것의 적용가능성에 대한 탐구에 바쳤다. 포퍼는 과학의 합리성의 근거를 비판과 토론에서 처음으로써 ‘합리적 태도’와 ‘비판적 태도’를 동일한 것으로 여긴다. 과학에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합리적 토론의 방법이며, 이 방법은 문제를 분명히 진술하고 그에 대한 해답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또한 이 방법이 적용되는 사회가 열린 사회요, 바람직스러운 사회이다. 그는 1994년 작고할 때까지 이러한 방법론을 누구보다도 끈질기게 실천하였다. 비트겐슈타인과의 논쟁은 물론이고,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에 참가한 일, 아도르노와의 ‘독일사회학의 실증주의 논쟁’ ‘혁명이냐 개혁이냐’라는 주제를 두고 벌어진 마르쿠제와의 논쟁, 말년에 있었던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 관한 쿤과의 논쟁 등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결코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자세이며, 현실에 바탕을 두고 철학을 하는 태도였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주장들은 너무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철학은 공허하다는 것이다. 포퍼의 철학은 바로 이러한 철학에 대한 인상을 씻어내는 강점을 갖는다. 실제로 방법론에 대한 포퍼의 입장은 여러 분야의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포퍼철학은 철학자들보다 오히려 분과 학문의 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포퍼학도임을 공언해 온 과학자들 중에는 심리학자인 캠벨, 신경생리학자인 존 에클스(John Eccles), 생물학자인 메다워와 ‘우연과 필연’으로 잘 알려진 자크 모노(Jacques Mono), 동물형태학자인 로렌츠 등이 있으며, 이 가운데 에클즈, 메다워, 모노, 로렌츠는 노벨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탁월한 미술사가인 에른스크 곰브리치(Ernst Gombrich),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 등을 들 수 있다.

포퍼가 이러한 철학 밖의 영역에 대해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포퍼의 철학하는 태도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포퍼에 따르면 철학의 문제는 항상 철학 외부로부터 생기며, 철학의 문제를 철학 속에서만 찾는 철학은 마치 근친교배처럼 퇴행현상을 보일 뿐이다. 사실상 포퍼의 철학은 철학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골몰하는 가운데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포퍼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항상 철학 외부에 있는 절박한 문제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그 근원이 파괴된다면 철학적 문제도 절멸해 버린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철학자들은 철학적 성공이 필연적으로 보장되는 열쇼ㅚ를 찾으려고 하기 쉽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이나 테크닉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나 케크닉이 아니고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문제에 대한 불타는 정열 혹은 그리이스인들이 말한 바와 같은 경이감을 느낄 수 있는 자질이다.” 이러한 포퍼의 말은 철학적 삶을 살려는 평범한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조언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포퍼의 말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 내세우는 이론들은 문제해결의 시도이다. 그리고 이론이란 세계를 포획하기 위하여, 즉 이를 합리화하고 설명하고 잘 다루려고 우리가 던지는 그물이다. 우리는 그물코를 더 촘촘히 만드려고 애쓸 뿐이다”


* 소피아21 : 이 글은 경상대신문 1995년 4월 기획시리즈 [세기의 석학]에 실린 정병훈 교수(현 경상대학교 교수)의 글입니다.